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F-4 팬텀 II (문단 편집) == 개발 == [[미 해군]]의 요구에 의해 [[맥도넬 더글러스]] 사는 1953년 장거리 공격용 전투기에 대한 예비설계를 시작하여 쌍발 엔진의 전천후 장거리 복좌형 방공전투기를 연구하기 시작했다. 1954년 2대의 시제기 제작이 발주되어 강력한 [[레이더]]와 3시간 이상의 항속능력을 갖춘 시제기가 1958년 첫 비행(F-4A)을 실시한 이래, 실전용으로 배치된 F-4B는 1960년 초부터 미 해군/해병대에 [[인도]]되었고 당시 케네디 정부의 국방장관 [[로버트 맥나마라]]의 지시에 의해 [[미 공군]]에서도 채용을 검토한 끝에 F-110 스펙터(이후 F-4C)라는 이름으로 채용, 이후 미 공군용으로 전자장비를 보강한 F-4D가 생산되어 [[베트남전]]에 참전하였다. 최초의 F-4 설계는 [[미 해군]]의 요구에 의해 시작된 것이 아니라 [[맥도널 더글라스]]의 독자 계획으로부터 출발했다. 때문에 F-4의 초기 설계안에 대한 자료는 사내 기밀로 분류된지라 많지 않다. 초기 설계를 마무리한 후 맥도널 더글라스는 이 설계안을 미 해군에 제시하였으며, 미 해군은 F-4를 처음 봤을때 넉넉한 무장탑재량에 주목, 함재 [[공격기]]로 개발할 것을 주문했다가 다시 함대 방공까지 맡을 수 있는 [[전폭기|다목적 전투기]]까지 발전하게 된 것이다. [[제미니 계획]]을 앞두고 선발된 [[NASA 우주인단]]의 제2기인 뉴 나인 클래스가 대부분 1950년대에 개발되던 당시 F-4 프로그램에서 활동한 [[테스트 파일럿]]들이다. [[짐 러블]], [[존 영]]으로 대표되는 이들은 훗날 [[아폴로 계획|아폴로]], 그리고 [[스카이랩]], [[우주왕복선]] 프로그램까지 이어지는 [[NASA]]의 역사를 장식한다. 이 시기의 대표적인 인물이 존 영으로, 존 영의 자서전에는 F-4와 [[F-8]]을 테스트하던 시절의 이야기가 자세하게 소개되어 있다. "[[알레이 버크|해군참모총장]]께서 손수 전보를 보내왔는데 러블 대신 내가 받은 게 자랑ㅋ"[* 정확히 말하자면 이것은 칭찬한 게 아니라 '''갈굼'''인데, F-4를 쌔끈하게 조종하다가 "지금 니가 일으킨 [[소닉붐]] 때문에 체사피크 근처 창문들이 싹 다 박살났다고 난리가 났는데 어쩔래 이거?" 란 내용. 여담으로 이 시기 참모총장은 바로 [[알레이 버크]]다. 그나마 다행인 점은 당시 테스트 파일럿 매니저였던 [[짐 러블]]한테 전보를 안 보내고 알레이 버크가 직접 갈궈서 내리갈굼을 방지한 정도?] 같은 얘기 등, 이것은 또 다른 의미도 있는데 이 시절 F-4 테스트 파일럿들이 [[맥도넬 더글러스]]를 자주 드나들며 관계자들과 호흡을 맞추었고 그 엔지니어들이 제미니를 만들 때도 유지된 것이다. 이 외에 미 해군 항공대 50주년을 기념한다고 F-4를 [[공중급유기]]까지 동원해서 전국 순회비행을 시킬 때의 조종사도 [[아폴로 12호]] 사령선 조종사인 [[리처드 고든]]이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